전 세계 인구 중 100세를 넘기고도 큰 병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타고난 유전자나 운으로 돌리지만, 미국 보스턴대학교의 뉴잉글랜드 100세인 연구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장수 연구는 전혀 다른 답을 내놓습니다. 100세를 넘긴 사람들의 혈액을 분석해 보면, 우연이라 보기 어려운 공통된 수치 몇 가지가 반복해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인슐린, 염증 지표, 아디포넥틴, DHEA-S라는 호르몬 네 가지가 바로 그 핵심입니다.

인슐린 수치가 낮을수록 세포가 천천히 늙습니다
도쿄 100세인 연구에서 304명의 100세 이상 노인을 조사한 결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비율은 6.0%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60대(15.3%)와 70대(14.7%) 당뇨 발병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핀란드와 이탈리아의 100세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확인되었는데, 핀란드 100세인의 제2형 당뇨병 비율은 10%, 이탈리아는 4.9%로 모두 같은 연령대 일반 인구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혈당 관리를 잘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하지만, 과잉 분비된 인슐린은 세포의 노화 속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 볼티모어 노화 종단연구에서는 낮은 인슐린 수치, 낮은 체온, 느리게 감소하는 DHEA-S 수치라는 세 가지 특징을 함께 지닌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유의미하게 더 오래 생존했다는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동물 실험을 포함한 여러 연구에서도 칼로리 제한을 통해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낮추는 것이 수명 연장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식습관이 인슐린 분비량을 좌우하고, 그 수치가 다시 세포의 노화 속도와 만성질환 발생 위험에 영향을 미친다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정제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와 과식이 반복되면 인슐린 분비가 늘어나고, 이는 장기적으로 비만과 대사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염증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균형을 맞춥니다
나이가 들면 몸속에서는 '염증노화'라 불리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C반응성단백질과 인터루킨-6 같은 염증 지표는 나이가 들수록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은 100세인들이 이러한 염증 자체를 완전히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염증 반응을 균형 있게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한 연구는 100세인의 혈액에서 C반응성단백질, 인터루킨-6, 종양괴사인자 같은 염증성 지표가 일반 고령자보다 오히려 높게 측정되었지만, 동시에 항염증성 물질인 인터루킨-10 수치도 함께 상승해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반면 조직 손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터루킨-17A, 인터루킨-1β 같은 염증성 인자는 젊은 성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100세인의 몸이 염증을 무조건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로운 염증 신호와 이를 조절하는 신호 사이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쿠바의 100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다른 고령자들보다 인터루킨-6, 종양괴사인자, C반응성단백질 수치가 낮게 유지되고 있었고, 일상생활 수행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만성 염증을 잘 통제하는 몸 상태가 혈관 손상, 인지 기능 저하, 만성질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혈관을 스스로 고치는 호르몬, 아디포넥틴이 더 많이 분비됩니다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디포넥틴은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고, 혈관 내벽을 보호하며, 항염증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폴란드의 100세인 58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이들의 아디포넥틴 수치가 70대 고령자보다 모든 형태에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95세 이상 장수인 118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아디포넥틴 수치가 체질량지수, 허리둘레, 체지방률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HDL 콜레스테롤과는 비례 관계를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디포넥틴의 역할이 나이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입니다. 60~70대에서는 아디포넥틴 수치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오히려 사망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보고되었지만, 100세 이상에서는 이러한 역의 관계가 사라지고 수치가 높을수록 당뇨병 발생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즉 아디포넥틴이 단순히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나이와 신체 상태에 맞게 적절히 분비되고 조절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회춘 호르몬이라 불리는 DHEA-S, 천천히 줄어드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DHEA-S는 부신에서 분비되어 다양한 성호르몬으로 전환되는 원료 호르몬으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앞서 언급한 볼티모어 노화 종단연구에서는 이 호르몬의 감소 속도가 느린 사람일수록 생존 기간이 길었다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스웨덴의 고령 남성 2,644명을 대상으로 한 코호트 연구에서도 DHEA-S 수치가 가장 낮은 그룹은 평균 4.5년의 추적 기간 동안 전체 사망률과 심혈관질환 사망률이 모두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다만 모든 연구가 동일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DHEA-S 수치와 심혈관질환 사망률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는 DHEA-S가 단독으로 수명을 결정하는 지표라기보다, 전반적인 신체 기능과 호르몬 균형을 보여주는 하나의 신호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다수의 연구에서 이 수치의 급격한 저하를 막는 것이 근육량과 골밀도,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는 비교적 의견이 일치합니다.
결국 핵심은 유전자가 아니라 매일의 식습관과 생활 방식입니다
인슐린, 염증 지표, 아디포넥틴, DHEA-S라는 네 가지 수치는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제된 탄수화물과 과식을 줄이는 식습관은 인슐린 분비를 낮추는 동시에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콩류, 등푸른생선, 채소 위주의 식단과 규칙적인 신체 활동은 아디포넥틴 분비를 촉진하고, DHEA-S의 급격한 감소를 늦추는 데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장수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 네 가지 수치를 건강한 범위 안에 유지해 온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혈액 속 수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식사와 움직임으로 매일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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